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벤나 함락 (문단 편집) == 경과 == [[오도아케르]]는 스키리 족의 왕이었으나 그의 군대가 동고트 족에게 몰살당한 후 서로마 제국의 군대에 들어가 제국의 방위를 책임졌다. 당시 [[서로마 제국]]의 황제였던 [[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]]는 통치 능력이 부족한 어린아이였고 갈리아, 히스파니아 등지에서 각 부족들이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하는 상황에 오레스테스는 로마제국의 장군으로 [[오도아케르]]를 임명하여 역량이 떨어진 제국군의 방위를 책임졌다. 오도아케르는 그 대가로 서로마 정부에 대해 상당한 양의 땅을 할양하라 요구했다. 하지만 오레스테스는 이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고 오도아케르는 반발했다. 사실 아무 이유 없이 땅을 내놓으라고 한 건 아니고, [[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|아우구스툴루스]]의 아버지인 [[오레스테스]]가 [[서로마 제국]]을 어떻게든 존속 시킬려고 노력하던 전대 황제 [[율리우스 네포스]]에 반란을 일으켰을 때 오도아케르 등 [[서로마 제국]]에 복무중인 이민족 군대에게 이탈리아의 땅을 약속했다가 로마인들의 반발이 생각보다 커서 실행을 머뭇거린 쪽에 가깝다. [[오레스테스]]는 몸을 피해 [[파비아]]로 도망쳤지만 뒤따라온 오도아케르의 군대에 잡혀 [[참형|목이 잘리게 되었다.]] 476년 9월, [[오레스테스]]가 죽고 [[오도아케르]]는 수도인 라벤나로 진격했고, [[오레스테스]]의 형이자 어린 황제의 백부였던 파울루스가 남은 군대를 데리고 맞서 싸우러 갔지만, 파울루스의 군대가 라벤나 근교에서 패배한 후 라벤나에서 농성전을 펼쳤지만 이틀 뒤 성문이 돌파당하면서 그는 병사들과 함께 싸우다 전사했다. 당시 16살이던 황제는 [[오도아케르]]에게 제위를 양위하도록 강요받았고, 이리하여 기원전 753년부터 시작된 로마 제국의 서방 통치는 끝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